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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북아 질서와 평화체제의 구축
 

2001-08-21 

Ⅰ. 신동북아 질서

 

1) 21세기 신문명의 변화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현대 세계는 혁명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세계질서를 맞이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진 냉전체제의 세계질서는 1980년대 중반 이래 소련의 급속한 쇠퇴와 함께 탈냉전의 역사를 맞이하였다.  냉전의 어두운 역사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현대 세계는 1990년대에 들어서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세계질서의 가능성을 맞이하고 있다.


현대 세계질서의 새로운 변화는 행위주체의 면에서 첫째,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세력의 쇠퇴와 해체, 둘째, 미국을 비롯한 일본, 독일 등의 선진 자본주의 세력의 상대적 부상, 셋째, 유럽국가연합과 같은 지역행위 주체의 자율성 증가, 넷째, 세계적 조직 및 기구의 역할 증대, 다섯째, 민족 및 종족의 독립성 강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복합적인 행위주체들은 자신들의 활동 영역에서도 첫째, 방어적 국가안보와 공동안보 형태의 지역안보 모색에 따른 국제 군사화 추세의 완화, 둘째, 안정적 지역시장 확보와 복지 요구의 충족을 위한 국제경제적 협력 및 경쟁의 강화, 셋째, 21세기의 생산력을 좌우하게 될 첨단과학기술의 우선적 추구, 넷째, 군사·경제력과 함께 21세기의 새로운 국력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정보·문화영역의 중시, 다섯째, 21세기의 최대 문제의 하나로 부상한 환경문제의 우선적 해결 모색, 여섯째, 인력의 고급화를 위한 교육·노인문제·여성문제의 중시, 일곱째, 국가를 포함한 국제정치 행위주체들의 이해 갈등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지구적 민주화 등과 같은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행위주체의 활동영역의 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세계질서는 공간적인 차원에서 상당한 편차를 보여주고 있다.  근대 국제질서의 노쇠기를 맞이하고 있는 유럽은 행위주체와 활동영역의 복합화라는 탈근대 지구질서를 모색하고 있으나, 19세기 중반 이래 뒤늦게 구미 중심의 근대 국제질서를 수용하기 시작하여 아직까지 근대 국제질서의 청년기를 겪고 있는 동북아는 냉전체제의 탈냉전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전환기에 머물러 있다.

 

2) 21세기 동북아 행위주체의 변화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를 포함하는 동북아 국제질서의 형성과 전개는 미국과 소련이 핵심적으로 주도하고, 일본과 중국이 한계내에서 지역적 역할을 수행하며, 그 밑에서 남북한 분단체제가 작동하는 3중구조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동북아질서의 3중구조적 모습은 다음과 같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동북아 국제질서를 주도해 온 초강대국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 냉전질서의 주도세력의 하나였던 소련이 1991년에 해체되었으며, 그 뒤를 잇고 있는 러시아는 사회주의 경제체제 이후 새로운 경제체제의 마련에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지속적으로 국내적 불안정을 겪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상당히 장기간 동안 국내 정치경제 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동북아의 초강대국 역할을 냉전시기와 같이 수행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소련의 해체에 따라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살아남게 되었으나, 장기적으로 국내정치 및 경제 등의 어려움으로 독자적으로 현재의 주도적 역할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풀어 나가기 위해서 경제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클린턴 행정부는 외교정책의 기조로서 관여(Engagement)와 확장(Enlargement)의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의 동북아적 적용이라고 볼 수 있는 미 국방부의 동아시아·태평양전략보고서(1995)는 일본·한국·오스트레일리아·아세안·뉴질랜드·태평양군도와 같은 기존 동맹 및 우호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관여정책과, 중국·러시아·베트남 등과 같은 구사회주의 국가들의 시장민주주의개혁을 지원하는 확장정책을 강조하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다자안보체제의 모색, 북한과의 제네바기본합의의 실천, 북한·캄보디아·영토 분규·대만과 같은 장기적 지역문제의 해결 모색, 대량파괴무기 및 미사일의 확산 및 사용의 방지를 지적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한 정책구상하에서 동북아의 탈냉전 질서를 위한 새로운 판짜기로서 첫째,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동시에 1996년의 미·일안전공동선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의 지역적, 지구적 역할을 강화하고, 둘째, 중국의 시장민주주의체제의 수용을 지원하고 그 이전 단계에서는 선택적 관여를 유지하며 군사적 위험에 대해서는 대응조치를 마련하는 3중전략을 추진하며, 셋째, 러시아와 함께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넷째,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한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다섯째, 북한과의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행하고 만약 북한이 그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동맹국들을 위협하는 경우에는 즉각 대응한다는 구체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노력은 1970년대 이래 활발하게 논의되어 왔던 미국의 상대적 쇠퇴론을 넘어서서 미국의 상대적 부활론의 일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미·일관계의 강화와 함께 미·중관계의 긴장을 가져다 줄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둘째, 세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은 자신의 국제적 역할에 대해서 국제정치·군사적 역할의 강화를 주장하는 "보통국가론"과 비군사적 차원에서 세계에의 기여를 강조하는 "지구민간세력론"의 논쟁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일본은 1995년의 신방위계획대강, 중기방위력정비계획(1996-2000)과 1996년의 미·일안보공동선언, 미·일 양국민에의 메시지 등을 통해서 지역적, 지구적 역할의 확대를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일본경제의 침체, 국내정치의 불안정, 문화력의 한계, 지역 및 국제지도력의 부재 등의 이유로 최근에 들어서서 일본의 상대적 쇠퇴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셋째, 19세기 중반까지 동아시아 질서의 중심국이었던 중국은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동북아 질서의 주도세력으로서 부상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 천안문사태의 후유증을 일단 수습하고 국내정치 및 국제정치의 안정을 모색하는 속에 고도성장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의 영향으로 21세기 세계 경제대국으로서의 중국에 관한 낙관적 전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의 정치·경제 현실을 보다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면, 21세기의 중국 경제는 보다 조심스럽게 전망되어져야 한다.  우선, 중국 경제가 1990년대 초반 이래 두자리수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으나, 고정자산 투자의 과잉 증가, 급격한 물가 상승, 경제구조의 불합리성, 국유기업의 부진 등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지 못하는 한 지속적인 고도성장의 가능성을 경제적인 시각에서도 불투명하다.


더구나 등소평 사망 후에 예상되는 정치적 불안정은 단기적으로 불가피하게 중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장기적으로 현재의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경우에 이에 상응하는 정치개혁을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결과로서는 상당한 기간의 조정기를 경제적 차원에서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국내적 제약요건과 함께 중·미관계가 협조보다는 갈등의 측면이 강화된다면, 21세기 중화경제권의 성장에 또 하나의 제약요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중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이루어지는 면이 있으나, 12억 인구의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현재의 경제성장은 21세기에 중국을 동북질서의 중심세력권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성장과 함께, 군사비의 지속적 증가, 해군력 강화, 핵실험의 계속등으로 미국과 일본에 의해 [중국위협론]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보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은 역사적으로 군사력보다는 문화력으로 중국적 세계질서를 이끌어 왔던 체험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어느 정도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갖추어지는 경우에는 보다 세련된 지역패권질서를 운영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넷째, 러시아는 극동지역에 방대한 경제적·군사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국내정치·경제개혁의 장기화 때문에 상당한 기간 동안은 명실상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다섯째, 남북한 분단체제는 한국의 상대적인 국제적 위상의 상승과 북한의 국제적 위상의 하강이라는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북한은 탈냉전기에 들어선 이래, 사회주의의 붕괴에 따른 국제역량의 약화, 국내 경제기반의 약화등으로 체제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이에따라 국내역량의 강화, 미국 및 일본 등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국제역량의 강화, 적대관계로서의 대남정책의 유지라는 탈냉전 3중 생존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생존전략이 현실적으로 북한체제의 활성화를 가져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선진 자본국가들의 경제적 지원이 북한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사고·경영·제도의 수용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북한이 쉽사리 감당하기 어려운 본격적인 국내개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과의 기본합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단기적으로는 급격한 국제정치·경제적 위상의 강화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에 한국은 탈냉전과 함께 소련 및 중국과의 국교 수립을 통해 국제역량의 강화를 이루었으며, 1990년대 중반 이래 세계화 정책의 적극적인 추진을 통해서 국제적 위상의 상승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국내 역량의 강화를 위해서 한국은 정치·행정·경제·사회·교육 등의 다양한 영역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는 1990년대에 들어서서 꾸준한 성장을 계속하여 내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1인당 국민소득 10,000불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여섯째, 동북아가 포함되어 있는 아시아·태평양 차원의 지역 행위주체의 형성은 유럽에 비해서 아직 맹아의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나, 유럽과 미주의 변화와 연관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단위 질서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강화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의 지역단위체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까지는 이 지역 국가들간의 힘의 불균형, 경제성장단계의 상이, 공동인식의 맹아적 형성, 지역경제협력에 대한 관심의 증가 등으로 1989년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의 창설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APEC의 장래는 이 지역 국가들의 힘의 각축, 경제발전 수준의 상이, 문화적 이질성 등으로 인해 상당한 기간동안 초보적인 협력수준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일곱째, 동북아는 과거에 비하여 눈에 띄게 경제적 조직이나 기구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정치·군사질서의 영역에서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활동을 찾아볼 수 있으며, 경제질서의 영역에서는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로 창설된 세계무역기구(WTO)의 활동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3) 21세기 동북아 활동영역의 변화

 

동북아질서의 변화하고 있는 행위주체들은 그들의 활동 영역에서도 다음과 같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첫째, 동북아의 정치·군사질서는 탈냉전 이후 미·소간의 대결이 사라져 가고, 미국과 일본의 관계 강화,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 한국과 러시아 및 중국과의 국교 수립, 북한과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개선의 모색 등과 같은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고 있으나 이와 동시에 미국의 장기적 역할 변화 가능성에 따른 중·일간의 지역질서의 주도권 경쟁, 일본 군사대국화의 위험성, 중국의 군사적 위협 가능성, 북한체제의 불안정에 따른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중요한 위험요소로 남아 있다.

 

냉전적 요소의 일보는 해결의 추세를 보여주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분쟁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동북아의 정치·군사질서 속에서 이 지역의 국가들은 새로운 개별국가적 노력,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양자적 협력, 다자적 협력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동북아 정치·군사질서의 주도세력인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기존의 군사전략을 밑바닥에서부터 재검토한 후에 대규모 지역분쟁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이라크와 북한의 군사력 사용에 동시 대처해서 승리하는 것을 기본 지침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유럽과 같은 규모의 10만명의 해외주둔 병력을 당분간 유지하도록 결정했다.

미국은 이와함께 냉전시기에 형성한 쌍무적 군사동맹체제를 탈냉전 시기의 위험요소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관한 우려가 커지지 않는 한도내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확대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북한의 핵문제나 체제적 불안정성 때문에 한국과의 군사적 동맹관계는 지속적인 유대 관계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인 탈냉전기에 들어서서 보여주는 새로운 노력의 하나로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협력적 안보의 가능성을 촉진하기 위한 다자안보체제에 대한 관심의 증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이 지역의 개별국가들의 상충하는 정치·군사적 이해 때문에 맹아적 수준의 대화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이 탈냉전의 동북아질서를 새롭게 짜고 있는 속에, 중국은 독자적인 정치·군사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하에 이 지역에서의 정치·군사적 역할을 확대하고 있고, 냉전시기에 비해서는 미국에 못지 않게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 한반도에는 주변상황이 탈냉전적 변화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냉전시기의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고 있어 남부간은 계속적인 군비 증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지역의 국가들이 상호간의 이해의 모색을 정치적으로 조절해 나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속에서 군사력의 증강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 정치·군사질서의 장래는 현단계로서는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다.


둘째, 동북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경제질서는 전후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해온 미국과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의 협조와 경쟁속에 형성되어 왔다.  이러한 틀 속에서 한국을 비롯한 NIES가 1960년대 이래 높은 경제성장을 계속하였으며, 태국과 말레이지아 같은 ASEAN국가들이 뒤를 이어 고도성장을 기록하였고,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중국과 베트남이 고도성장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중층적 경제발전과 함께 러시아·태평양 경제질서에서는 개별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지역경제협력의 형태로서 다양한 경제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환동해경제권], [환황해경제권] 등의 구상을 비롯하여 ASEAN자유무역지대나 APEC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광성 경제협력의 성공 여부는 우선적으로 이 지역의 위계적 경제질서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이해와 갈등의 조정과 해소에 있고, 보다 장기적으로 아시아·태평양의 새로운 공동체적 인식의 성장에 달려 있다.


동북아를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경제질서가 짜여져 나가는 과정에서 개별국가, 광성 경제권을 넘어서서 세계경제질서의 네트웍이나 조직 등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따라서 이 지역의 생산·무역·투자활동 등은 1995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세계무역기구와 같은 지구적 조직이 만들어 내는 경제질서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 동북아의 문화질서는 역사적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의 틀 안에서 상당한 동질성의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래 이 지역의 국가들이 뒤늦게 구미의 근대국가 모형을 수용하게 됨에 따라 기존의 전통적 사고, 행위 및 제도를 유럽의 근대적 사고, 행위 및 제도와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모습의 삶의 질서를 형성하여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적 세계질서의 단위체적 인식은 사라지고, 대신에 개별국가 중심의 새로운 단위체적 인식이 강하게 형성됨으로써 동북의 지역질서 형성에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세계질서의 탈냉전화와 함께 유럽은 개별국가 질서와 지역질서와의 복합화를 구체화하여 가고 있으나, 동북아는 여전히 일국 중심의 삶의 질서가 지구중심적 삶의 질서를 상대적으로 압도하고 있다.


넷째, 21세기를 향하고 있는 동북아질서는 기존의 국제질서가 당면하고 있었던 부국강변의 활동 영역을 넘어서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활용, 정보·커뮤니케이션·문화영역의 중시, 환경문제의 우선적 고려, 인적 자원의 고급화, 지구적 민주화 등을 중심활동영역의 하나로서 추진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탈근대적 활동 영역의 대표적 예로서 19세기 이래 산업화의 자기 모순적 결과로서 21세기의 최대 문제의 하나로서 부각되고 있는 환경문제는 동북아지역에서도 서서히 중심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대기 오염·해양 오염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동북아 차원의 협력이 보다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21세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지구적 노력도 이 지역의 정치·군사·경제·문화질서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현실적으로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다.


Ⅱ.  평화체제의 구축

 

신동북아 공생질서가 실질적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축이 선행 또는 병행조건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좁은 의미의 자국 중심주의에 기반한 정치적 또는 군사적 이해 갈등이 심화되어 있는 국가들간의 협력은 절대적 이익이 아닌 상대적 이익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므로 대단히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4단계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1)  동북아의 정치적 신뢰 구축

 

동북아 정치적 신뢰 구축은 우선 외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남북한, 북한·미국, 북한·일본, 북한·미국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며, 다음으로 외교관계가 존재하더라도 정치적 신뢰가상대적으로 낮은 미·중의 관계 개선이 시급하며, 마지막으로 [일본위협론] 또는 [중국위협론]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은 자신들에 대한 동북아 국가들의 정치적 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의 남북한 관계는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보하려는 적대관계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1948년에 단독 정부를 수립한 북한은 한국전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남한이라는 상대방에 대해서 군사전을 주로 하고 정치전을 종으로 하는 기본 노선을 추구하였다.  북한의 이러한 노선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 감에 따라, 북한은 1960년대에 들어서서 대남정책을 정치전으로 주로 하고 군사전을 종으로 하는 방향으로 추진하였다.  따라서, 북한은 남북한의 이해의 갈등을 3대 혁명역량강화-북한혁명역량강화, 남한혁명역량강화, 세계혁명역량강화-를 통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써 풀어 나가겠다는 기본 입장을 밝히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이래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권의 빠른 쇠퇴와 해체 속에서 국제적 기반을 잃어 왔으며, 이와 함께 국내적 기반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탈냉전 3중 생존전략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북한은 일차적으로 군사를 제외한 경제, 정치, 이념의 모든 면에서 약화하고 있는 국내역량을 회복하고, 동시에 소련의 해체에 따른 국제 역량의 약화를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개선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대남 정책의 영역에서는 1996년 9월의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새로운 변화를 보이지 않고 기존의 적대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대남정책은 통일전선의 전쟁적 측면과 평화적 측면의 이중성을 보여 주고 있다.


북한은 1995년에 잠정적으로 타결을 본 미국과의 핵문제 협상도 탈냉전 3중 생존전략의 틀 속에서 진행하였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과의 핵협상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북한의 국냉역량강화를 추진하였으며, 다음으로, 북한 핵의 현재와 미래를 동결, 포기하고 과거를 일정기간 유보하는 대가로서 미국과의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관계를 모색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한은 북한핵문제의 해결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가능한 한 중심적이 아닌 주변적으로 축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북한은 1996년 4월에 한국과 미국이 공동제의한 4자 회담에 대해서도 식량위기로 가시화 되고 있는 경제적 기반의 급속한 약화를 개선하고, 미국이라는 국제 역량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대응방안을 모색하면서, 남북한의 정치적 신뢰 구축에는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


북한이 현재와 같이 한국의 정치주도세력을 적으로 규정하는 통일전선에 기반한 대남정책이나 통일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첫걸음인 남북한의 정치적 신뢰 구축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남북한의 정치적 신뢰 구축은 우선적으로 북한의 대남정책의 변화 속에서 비로서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북한 대남정책의 변화 가능성은 북한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국제역량강화의 노력이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게 될 때 점차 커질 것이다.  북한은 직면하고 있는 생존적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 미국, 일본, 유럽연합등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그 중에서도 경제관계의 개선을 우선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개방을 위한 노력이 현재와 같이 [개혁 없는 개방]의 형태로 추구되는 경우에는, 자본주의적 사고, 행동양식 및 제도의 적절한 수용 없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자본과 기술만 도입하려 하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대단히 높다.  그리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자본과 기술이 소규모로 도입되더라도 현재와 같은 국내환경 속에서는 중국의 경제개방 특구와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와 같이 개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존 여건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는 속에서 북한은 체제 붕괴와 대남정책의 변화라는 갈림길에 직면하게 되고,  비로소 남한과의 정치적 신뢰 구축을 선택할 가능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국내외적 어려움의 빠른 심화 과정을 고려한다면, 북한의 대남정책의 재검토가 비교적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전개의 가능성 속에서, 남북한의 정치적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한국은 대북정책을 과거의 어느때보다도 신중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박한 차원의 "햇빛론"과 "바람론"의 혼란을 거듭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변화를 위한 노력에 대한 국제공조체제속의 적극적 지원과 북한의 장래를 위한 잘못된 노력에 대한 단호한 비협조의 일관성 있는 대응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동북아의 정치적 신뢰 구축에 단기적으로 가장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북한과의 정치적 신뢰 구축이다.  북한은 탈냉전 3중 생존전략의 틀 속에서 미국, 일본, 유럽연합등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정치적 신뢰 구축을 불가피하게 추진하는 반면, 한국과 정치적 신뢰 구축을 유보하고 있다.


동북아의 정치적 신뢰 구축을 위한 중·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신뢰 강화이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동북아의 냉전 질서는 소련의 해체라는 탈냉전의 변화와 함께 미국주도의 차별적 미·중·일 삼각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의 상대적 쇠퇴론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한 미국은 새로운 자신감을 가지고 21세기의 아시아·태평양 질서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미국은 일본과의 여러가지 갈등 요소가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중국과는 쌍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등 관계를 쉽사리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탈냉전 동북아 질서의 중심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미·중 관계가 갈등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국내체제의 상호 이질성이 점차 줄어들고 중국의 정치주도세력의 안정이 자리잡는 속에서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신뢰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동북아의 정치적 신뢰 구축은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신뢰 구축과 더불어 [일본위협론]과 [중국위협론]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불안감의 해소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일본이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정치·군사적 역할의 증대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는 속에, 주변국가들은 일본의 일국번영주의와 군사대국화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보여 주고 있다.  탈냉전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 일본은 1995년말 [신방위계획의 대강]과 새로운 [중기 방위력 정비 계획]을 채택하고, 1996년 4월에는 미국과 함께 [미일 안전 보장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21세기의 새로운 위상 설정을 위한 일본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노력이 주변 국가들에게 위협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면, 일본은 보다 적극적으로 과거를 스스로 청산하고 이들 국가들과의 미래의 잘 된 만남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한편, 중국의 지속적인 고도 경제성장과 군사력의 증강에 따라 제기되기 시작하고 있는 [중국위협론]은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국내 정치·경제적 과제를 생각한다면, 객관적으로는 단기적이기보다는 중·장기적 문제이기는 하나, 주변 국가들의 주관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단순히 언어가 아닌 현실의 장에서 패권국가가 아닌 평화 국가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2) 동북아의 군사적 신뢰 구축

 

동북아의 정치적 신뢰 구축이 동북아 평화질서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비 축소를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동북아의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한반도, 서태평양, 그리고 일본 및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군사적 신뢰 구축이 양자적 그리고 다자적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의 군사적 신뢰 구축 논의는 1990년대 초의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하여 진행되었다.  남북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타결한 기본합의서의 제2장 남북 불가침에서 불가침의 이행과 보장을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방안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군사적 신뢰 구축 방안을 남북한 불가침 선언의 실질적 이행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동시에 한반도 군비 축소의 전제조건으로서 강조하고 있으나, 북한은 남북한의 불가침 선언과 북한·미국의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남북한의 실질적 군비감축과 주한미군의 철수가 이루어진다면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 구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므로 군비축소의 전제조건으로서 강조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군사적 신뢰 구축의 핵심적 내용도 남북의 군사력과 군사의도의 투명성의 증진보다는 팀스피리트와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의 규제에 보다 많은 초점을 맞추어 왔다.  따라서 1992년에 서명·발의된 남북고위급회담의 기본합의서에 포함된 군사적 신뢰 구축 방안은 현실화되지 못한 채 단순한 문서상의 방안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군사적 신뢰 구축 방안의 현실화는 정치적 신뢰 구축의 전제 위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동북아의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한반도의 군사적 신뢰 구축과 함께 서태평양을 냉전의 바다에서 평화의 바다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러시아, 그리고 중국, 일본, 남북한이 첫째, 해상무기체계와 병력의 정보교환, 둘째, 중요 군사훈련과 활동의 사전 통보, 셋째, 중요 훈련의 참관인 초청, 넷째, 군사적 신뢰구축의 검증 등을 위한 노력을 함께 시작해야 한다.


동북아의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다음으로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것은 일본과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군사적 신뢰 구축 방안이다.  일본은 탈냉전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 대단히 조심스럽게 자위대의 역할 확대, 군사력의 질적 향상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의 위협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주변국가들의 군사적 불신감을 상대적으로 높여 주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첫째, 일본 군사력 증강의 비용과 의도의 투명성을 최대한 높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넘어서서 [동북아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동북아 관련 당사국들과 공동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군사훈련과 활동이 동북아 관련 당사국에게 사전 통보 되어야 한다.  셋째, 일본의 중요 군사훈련에 참관인 초청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군사적 신뢰 구축 방안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1970년대말이래 고도 경제성장을 맞이하고 있는 중국의 군사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주변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군사적 불안감이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  이에 따라서, 중국은 1995년 11월 국무원산하 신문업무국 명의로 [중국의 군비통제와 군축]이라는 중국판 국방백서를 발표했다. 중국은 이 문서를 통해서 인류의 평화와 발전 촉진, 백만병력의 감축, 국방비 지출의 최소화, 군수공업기술의 평화적 이용, 군사적 민감한 물질과 군사장비 양도의 엄격한 통제, 국제 군비통제와 군축의 적극적 추진을 공식적으로 강조했다.  이러한 중국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탈냉전 속에 계속하고 있는 지하 핵실험, 항공모함의 구입 또는 건조계획, 통상무기체계의 지속적 현대화는 주변국가들의 군사적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지 못하는 요인들이 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주변국가들의 군사적 신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군사력과 군사정책의 투명도를 높이기 위한 보다 본격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동북아의 군사적 신뢰 구축은 개별적, 양자적 노력과 함께 다자적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ASEAN과 역외국가들의 참여로 구성된 아세아지역안보포럼(ARF)이 1994년부터 신뢰 및 안보구축, 핵 비확산, 평화유지 협력, 군사정보 교환, 해상안보문제, 예방외교 등에 관한 초보적 연구와 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화를 위한 대화의 수준에서 북태평양 안보대화(NPCSD)나 아·태 안보협력회(CSCAP) 등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자적 노력들은 동북아질서의 정치·군사적 특수성과 문화적 이질성 등의 난관 때문에 단기적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며,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3) 동북아의 군비축소

 

동북아 국가들의 이해 갈등을 비군사적 수단으로 해소하고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에 형성되는 군사적 신뢰를 기반으로 군비증강 추세를 군비축소 방향으로 전환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동북아의 군비축소는 한반도, 서태평양, 일본, 중국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군비축소 문제는 변화하는 국내외 질서 속에서 1990년대에 들어서서 보다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며, 남북한 정부는 1990년대 초의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군비축소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남북무력감축방안은 첫째, 남북한은 무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며, 둘째, 남북한은 군사 장비의 질적 개선을 중지하고, 셋째, 남북한은 군사 정형을 상호 통보하며 검증을 실현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남북한의 단계적 무력 감축에 대해서는 군축안이 합의된 때부터 3∼년 동안에 3단계에 3단계로 나누어 쌍방의 병력을 각각 10만명 아래 수준으로 줄이고 단계별 병력 감축에 상응하여 군사 장비들을 축소 폐기하고 모든 민간군사조직과 민간 무력은 정규 무력감축의 첫단계에서 해체할 것을 제안하였다.

북한의 외국 무력 철수 방안은 첫째, 남북한 한반도를 비핵지대로 만들고, 둘째, 남북한은 한반도에서의 일체의 외국 군대를 철수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외국 군대의 철수에 대해서는 주한 미군과 철수에 상응하게 한국에 설치된 미군사기지들도 단계적으로 철폐되도록 할 것을 제안하였다.  다만, 북한은 탈냉전 3중 생존 전략의 필수 조건인 미국과의 평화 협정 및 새로운 평화보장체계의 마련을 위한 촉진 방안으로서 주한미군문제에 대해 보다 조심스러운 입장을 최근 취하고 있다.


한국은 남북한 군비감축추진의 경우에 다음 5개 항목의 추진 방향을 제안하였다.  첫째, 공격형 전력 구조를 방어형 전력 구조로 전환시켜야 한다.  둘째, 상호 동수보유원칙을 적용하여 군사력의 상호 균형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군사력을 많이 보유한 측이 적게 보유한 측의 수준으로 먼저 감축하고 상호 동등 수준으로 되었을 때 동수균형 감축방식으로 추진해 나간다.  셋째, 무기 감축에 따라 병력을 감축해 나가되, 상비 전력 감축에 상응하여 예비 전력과 유사 군사직도 함께 감축해 나간다.  넷째, 군축과정에서의 합의 사항 이행을 보장하기 위하여 반드시 현장 검증과 감시를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다섯째, 쌍방 군사력의 최종 유지 수준은 통일국가의 군사적 수요를 감안하여 쌍방 합의 하에 결정한다.


남북한의 한반도 군비축소 논의는 현재까지는 선전적인 차원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나, 국내외의 상황 변화와 함께, 남북한이 적대 관계에서 평화공존 관계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될 경우가 온다면, 군비축소 논의의 가능성은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군축 논의에서 이제까지 기반 하여 왔던 억지의 원칙을 넘어서서 방어적 방어의 원칙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공동안보의 원칙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남북한의 평화를 위한 군비축소의 노력이 억지의 원칙을 넘어 공동안보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보다 구체적인 군비축소의 방안이 모색되어져야 한다.  첫째, 남북한의 공격용 무기체계를 재배치하고 감축한다.  둘째, 현재의 억지 또는 공격 중심의 남북한의 군사력을 상호간의 방어적 방어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감축한다.  셋째, 남북한의 무기생산과 무기수입을 규제하되 공격용 무기체계를 우선 대상으로 한다.  이와 병행하여 남북한 군비 산업의 평화 산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남북한은 합의되는 군축과정 준수 여부를 현장 검증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변화하는 아시아·태평양 군사질서를 고려하여, 한반도 군사력의 최종 유지 수준을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한반도 군비축소 방안은 현재와 같은 남북한의 적대 관계 속에서는 현실화될 수 없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으로 남북한의 새로운 정치지도세력이 성공적으로 그들의 국내 체제를 개혁해 나가면서 남북한의 정치적 평화의 기초가 마련되고, 아시아·태평양 군사질서의 안정이 이루어진다면, 한반도의 군비축소 방안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군비축소 방안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남북한간에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단계에 들어서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실질적 당사자인 남북한이 최종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중 등의 국제적 보장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현재로서는 남한 당국을 실질적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고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므로, 단기적인 해결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북아 군비축소를 위해 한반도의 군비축소와 함께 중요한 것은 동해를 포함한 서태평양의 군비축소이다.  이 지역에서는 냉전기간 동안 미국의 태평양 함대와 소련의 극동함대의 군비경쟁이 계속되었다.  소련은 1980년대 중반 이래의 탈냉전과 함께 극동함대의 작전 활동을 축소하고 양적 축소와 질적 개선을 추구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구 소련이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국가연합으로 재구성됨에 따라 극동함대는 보다 본격적인 군비축소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 속에서 미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그리고 남북한이 서태평양을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군력 감축을 조심스럽게 논의해야 한다.


동북아 군비축소의 또 하나의 핵심문제는 일본과 중국의 군비 증강 추세를 어떻게 군비축소 추세로 전환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본은 탈냉전의 시기에 들어서서 군사력의 양적 증강을 상대적으로 완화시키고 있기는 하나, 군사력의 질적 증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군비축소의 본격적 노력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일본의 군비 수준은 동북아에 존재하는 불안정과 위협에 대응하여 미·일 안보체제와 일본 국내체제의 틀 속에서 결정되어 왔으며, 일본의 군비 수준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동북아 국가들은 일본의 군비수준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일본의 군비수준이 미·일 안보체제의 틀을 넘어서서 명실상부한 동북아 안보체제의 틀 속에서 결정될 수 있을 때, 일본의 군비가 더 이상 동북아의 불안정과 위협요소로 평가받지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일본은 21세기의 새로운 세계질서와 동북아질서의 구축을 위해 군사적 공헌 이전에 우선적으로 경제 및 문화적 공헌을 추진하고, 다음으로는 정치적 공헌을 모색해야 한다.


한편, 중국은 탈냉전기에 들어서서 비교적 빠른 속도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이에 따라서 중·러 국경의 군사력을 감축하여 왔다.  그러나 중국은 서태평양쪽의 미국, 일본, 대만, 동남아 국가들과는 탈냉전 속의 냉전 가능성을 유지하면서, 군비축소 대신에 군비증강을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동아시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장기적 포석이 아니라 방어적 목적이라는 중국정부의 주장은 주변국가들에 의해 충분히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패권국가가 아닌 평화국가로 주변국가들에 의해 인식되어 상호간에 군비증강 대신에 군비축소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국은 언어의 차원을 넘어서서 실천의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군비축소를 추진해야 한다.


동북아 군축을 위한 이러한 개별적, 양자적 노력들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되면, 동북아 국가들도 유럽의 다자적 군축방안과 유사한 노력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4) 신동북아 국제정치 질서

 

동북아 국가들은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정치적 신뢰 구축, 군사적 신뢰 구축, 그리고 군비축소를 필요로 하나, 보다 궁극적으로는 동북아 관련 국가들의 이해의 갈등과 협조를 군사적 수단이 아닌 정치적 수단에 의해 풀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동북아 국제정치 질서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냉정기간 동안에 형성된 미·소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질서는 1980년대 중반이래 탈냉전기에 접어들면서 소련의 해체와 중국 및 일본의 상대적 부상과 함께 주도국으로서의 미국이 일본을 품고 중국을 길들이려는 차별적 3각 관계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탈근대 지구질서의 징후를 보여주게 될 21세기에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미국이 주도하는 3국 중심의 동북아 국제질서를 넘어서서 동북아 국가들의 공동주도로 형성되는 보다 복합적인 새 동북아 질서를 모색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동북아 신질서의 구축을 위해서는 동북아 관련국가들의 개별적, 양자적, 그리고 다자적 노력들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동북아 국가들은 개별적으로 21세기 신국제질서의 주도적 단위체로 활동하기 위한 정치, 경제 및 이념적 기반을 우선적으로 구축해 나가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21세기의 새로운 민주주의가 추구되어져야 한다.  민주화의 역사는 근대이래 전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어 왔으나, 21세기를 앞두고 소박한 차원의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 그리고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를 합리적으로 결합시켜 보려는 사회민주주의의 노력이 모두 그 나름의 한계에 부딪쳐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색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21세기의 새로운 민주주의가 동북아에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동북아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를 동양적 연대감을 매개로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밖으로는 지역 및 국제 민주주의와 안으로는 지방 민주주의와 복합적으로 추진되는 지구적 민주주의의 모습을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동북아의 개별국가들은 성장과 분배의 갈등을 성공적으로 풀어나감으로써 21세기 신세계 질서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단위체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동북아의 사회주의 통제경제 국가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성공적으로 수용해야 하며, 한편 자본주의 시장경제국가들은 부국만이 아닌 부민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경제정책은 동시에 지역 및 세계경제질서와 갈등보다는 협력의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치, 경제적 기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동북아 국가들은 21세기의 새로운 이념적 기반으로서 근대적 의미의 민족주의가 밖으로는 지역 및 세계의 공간을 품고 안으로는 지방, 계급, 그리고 개인의 공간을 동시에 품으로 수 있는 지구적 민족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근대와 탈근대의 숙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새로운 정치, 경제, 이념적 기반의 마련과 함께 21세기 탈근대 지구질서의 새로운 영역인 과학기술, 정보, 환경, 인력개발 등의 기반을 착실하게 다져야 한다.

둘째, 동북아국가들은 이 지역에서 평화와 번영을 기반으로 한 공생의 신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근대 및 탈근대적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국제적 기반을 쌓아 나가야 한다.  이러한 국제적 기반의 첫 출발은 동북아 국가들간에 정치적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양자간의 외교관계를 최대한 활용하여 당사국들의 이해를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의 경우에 개별국가들의 상대적 힘의 지나친 불균형 때문에 양자적 접근을 통한 21세기의 신동북아질서의 모색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변화를 감안한다면, 동북아국제정치질서는 미국을 비롯한 중·일의 3자 주도 체제로 전개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다자 주도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의 격차가 있는 당사국들의 양자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셋째, 21세기 신동북아 질서의 형성을 위한 양자적 노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북아 국가들의 다자적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21세기의 동북아가 당면하게 될 중요한 숙제인 동북아의 일본화 또는 중국화의 가능성을 희피하기 위한 다자적 노력은 우선 미·일·중 상호견제체제의 형성 및 유지를 위해 기울여져야 한다.  따라서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역할은 이러한 각도에서 새롭게 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지속되고 중국과 일본의 상대적 부상이 계속되는 경우에 동북아 국가들의 지정학적 차원의 세력균형 노력은 한계에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를 미래지향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시간과 공간관념을 넘어선 탈근대적 시간과 공간관념 위에 서서 유럽공동체를 포함한 세계의 동북아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하여 동북의 일본화, 중국화가 아니라 일본, 중국의 동북아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다자적 노력의 구체적 제도화를 위해서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제도화를 위한 노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전신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회원국들은 1990년 11월의 파리회의에서 첫째, 2년마다 열리는 유럽안보협력회의의 후속회의의 개최를 활용하여 2년마다 회원국들이 정상회담을 마련하고, 둘째, 회원국의 외무장관회의를 설치하고, 셋째, 외무장관회의를 준비하고 결정사항을 실행하기 위해 고위급 실무자 회의를 두고, 넷째, 유럽안보협력회의의 후속회의는 2년마다 3개월 이내로 열고, 다섯째, 유럽안보협력회의의 기구, 모임 및 협의를 행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사무국을 프라하에 설치하며, 여섯째, 비엔나에 분쟁방지센터(CPC)를 설치하고, 일곱째, 바르샤바에 각국의 자유선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유선거 사무실을 두고, 여덟째, 유럽의회의 창설을 준비하고 논의할 것을 결정하였다.


근대국가질서의 노쇠기에 접어들면서 자기모순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유럽과 달리 근대국가질서의 청년기를 살고 있는 동북아국가들은 냉전시기 이래의 정치·군사적 갈등의 미청산, 경제성장단계의 상이, 문화의 이질화 등으로 인해 유럽의 다자적 노력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북아국가들도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비축소를 위한 양자적, 다자적 노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동북아의 평화, 번영, 그리고 공생을 위한 다자적 노력의 제도화를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다자적 노력의 구체적 실천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실천의 주체가 단순히 국가단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는 지역 단위체와 세계적 조직을 품고, 안으로는 지방, 이익단위체, 그리고 개인까지를 품어서 복합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속에 동북아국가들의 근대적 만남의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는 복합적 만남의 장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러한 동북아의 복합적 단위체들의 복합적 만남의 공간도 근대적 의미의 부국강병 공간을 넘어서서 평화, 번영, 기술, 정보, 문화, 환경, 인력개발, 민주의 공간으로 확대되어 나가야 한다.


동북아국가들이 개별적, 양자적, 다자적, 그리고 지구적 노력을 통해서 근대와 탈근대의 복합공간에서 복합단위체로 만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동북아 평화체제가 동북아 공생질서의 일부로서 자리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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